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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고대 문화 초기 지배층에게는 시조 신앙이 민간에는 샤머니즘과 점술이 널리 퍼져 있었다.
고구려: 동명성왕, 하백신, 부여신 숭배
백제: 동명신, 구태신 숭배
신라: 박혁거세 시조묘 건립
민간: 천신, 산신, 해신, 일월신 등 자연신 숭배 및 자체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.
- 삼국이 중앙 집권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러한 초부족적 사상을 통일해야 했고 그 방법으로 불교를 수용하여 지배질서를 강화하고자 하였다.
- 왕실에서 불교 수용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기에 삼국의 불교는 왕실 · 귀족 중심의 불교였다.
- 왕실 불교로 호국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.
- 내세적 성격보다 현세에 구복을 구하는 현세구복적인 성격을 띤다.
- 불교는 새로운 국가 정신 확립에 기여(왕권 강화)하였고 선진 문화를 수용하면서 새로운 문화 창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.
1. 삼국 불교의 수용
고구려 | 백제 | 신라 |
소수림왕(372) | 침류왕(384) | 전래: 눌지왕(457) 고구려의 묵호자 |
전진의 순도와 아도 | 동진의 마라난타 | 공인: 법흥왕(527) 이차돈의 순교가 계기 |
2. 삼국 불교의 발전
고구려 | 백제 | 신라 |
순도에 의해 전파된 삼론종 발달 고구려의 승랑은 체계화하여 중국 삼론종 발달에 기여함.(삼론종의 3대조) |
계율종 중심으로 발달 (율종, 계율 중시) |
왕권과 밀착하여 성행하였다. 업설, 왕즉불 사상, 미륵불 신앙 성행 계율종, 열반종 등 유행 |
혜량(6세기): 고구려→ 신라, 진흥왕 때 최초의 승통이 되어 백고좌회와 팔관회를 주관 | 아직기(4세기,근초고왕): 일본 태자 토도치랑지의 스승이 되어 한자를 교육함 | 진흥왕: 고구려 승려 혜랑을 국통으로 삼고 그 아래 주통, 군통을 두어 교단을 조직 |
혜자(6세기 말, 영양왕): 일본의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됨 | 왕인(근초고왕): 천자문과 논어를 전하고 교육함, 군신들에게 경전을 가르침 | 원광(진평왕): 수에서 열반종 깨우침, 화랑도 세속5계, 수에 보내는 걸사표지음 |
담징(7세기, 영양왕):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가 종이와 먹 제조법을 전하고, 호류사(법륭사) 금당벽화를 그림 | 단양이·고안무(6세기, 무령왕): 일본에 유학 전파 | 자장(선덕여왕): 대국통에 임명, 계율종 개창, 자장의 건의로 황룡사 9층 목탑 건립(백제 건축가 이비지 축조) |
혜관(영류왕): 일본에 불교전파, 일본 삼론종의개조 | 겸익(6세기, 성왕): 인도에서 율종 불경을 가져와 번역 | |
보덕(보장왕): 백제 완산주로 건너가 열반종 강론 | 노리사치계(552, 성왕): 일본에 불상과 불경 등 최초로 불교 전파 | 호국불교에 해당 |
도현(7세기, 보장왕): 연개소문의 도교 장려책으로 일본에 건너가 불법을 저수하면서 반고구려 입장인 <일본세기> 저술 | · 혜총(6세기, 위덕왕): 고구려 혜자와 함께 일본쇼토쿠 태자의 스승, 계율종 전파 · 아좌태좌: 쇼토쿠 스승, 그림(초상화)전수 |
· 불국토 사상: 왕이 지배하는 땅은 부처님 땅 · 인왕경: 나라를 보호하는 내용 |
승랑: 중국에 건너가 삼론종 발전에 기여 | · 관륵(7세기, 무왕): 천문, 역서, 지리에 관한 책등을 전함, 관륵의 건의로 일본의 승직 제도를 최초로 시행, 달력 · 미마지(7세기, 무왕): 중국에서 기악무를 익히고 돌아와 일본에 전파 |
· 팔관회: 토속신앙에 토대를 둔 것으로 승려가주관하면서 제천행사와 불교의식이 결합하여 호국적인 의식이 되었음. 국가와 왕실의 태평을 기원하는 의식. 외국 상인과 사신들의 무역의 장이 되기도 함 |
수산리 고분 벽화→일본의 다카마쓰 고분 벽화에 영향을 미침 | 일본 고류사 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호류사 백제 관음상 제작에 영항을 주었다. | 왕흥사: 백제 무왕이 호국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왕흥사 건립 |
5경박사, 의박사, 역박사, 천문박사, 채약사 및화가, 공예기술자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이들에의해 목탑이 세워지고 백제 가람 양식(사원)이 생겨났다. | · 사천왕사: 문무왕 때 당병의 내침을 물리치고고구려와 백제의 옛 땅을 통합하겠다는 의지 ·감은사: 문무왕이 시작하여 신문왕 때 완공. 신라를 보호하기 위한 기원이 담김 · 황룡사9층탑: 높이 70m로 아홉 나라를 굴복시킨다는 믿음(몽고 침입때 소실) |
3. 통일 신라
- 통일 신라의 불교는 철학적 불교, 학문적 불교로 발전하였다.
- 신라 지역에서는 화엄종이 백제지역에서는 법상종이 유행하였으며, 불교가 대중화되어 밀교가 유행하였다.
원효(설서당, 617~686) | 의상(625~702) |
6두품 출신으로 무열왕· 문무왕 때 주로 활약하였다. | 진골 출신, 문무왕의 정치적 자문을 맡았다. |
661년 의상과 유학길에 올랐으나 일체유심조(모든 것이 내 안에 원인이 있기에 답을 밖에서 구할 수 없다.)를 깨닫고 당 유학을 중단하였다. | 당 유학 시절 지엄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. |
태종 무열왕의 딸, 요석 공주와 결혼하여 아들 설총을 낳은 후 스스로 파계하였다. | 독창적인 해동 화엄종을 창시하고 원융사상을 설파하였다. |
파계승이 된 원효는 스스로 소성거사, 복성거사라 자처하며 무애가를 만들어 불교 대중화에 노력하였다. | 모든 존재가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있으면서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화엄사상을 정립하였다. |
아미타 신앙(정토종) - "누구나 '나무아미타불'만 염불하면 극락으로 왕생할 수 있다"-를 전도하며 불교 대중화를 이끌었다. | 일즉다 다즉일: '하나가 곧 만물이고, 만물이 곧 하나다' 라는 독특한 논리를 펼치며 전제 왕권 강화에 기여하였다. |
화쟁사상, 일심사상 주장: 민중 중심의 평등 · 화합을 강조하였고, 모든 진리는 하나의 진리를 향해있다는 뜻의 일심은 원효의 모든 사상의 근본이다. 이러한 사상을 중심으로 중관파와 유식파의 사상적 대립을 비판하며 통합을 시도하였다. | 아미타(내세) 신앙과 함께 현세에서 고난을 구제받고자 하는 관음 신앙으로 불교를 대중화하고자 하였다. |
교종의 종파 중 하나인 모두 성불할 수 있다는 법성종(경주 분황사)을 개창하였다. | 영주 부석사, 양양 낙산사 등 사원을 창건하였다. |
<대승기신론소> <십문화쟁론> <금강삼매경론> <화엄경소> <열반종유> <아미타경소> 등을 저술하였다. | <화엄일승법계도> <법계도> <법성계> 등을 저술하였다. 화엄사상의 핵심 요체를 그림과 글씨(210자)로 요약함 |
입적 후 애장왕 때 원효의 추모비인 '고선사 서당화상비'가 건립되었다. | 교단을 세우고 제자를 양성하였다. (의상십철) |
고려 숙종 때 화정(화쟁)국사로 추앙되었다. | 고려 숙종 때 해동화엄시조 원교국사로 추앙되었다. |
세계 모든 것은 공이다. 모든 현상은 식이다. | 원융무애, 이사무애 |
무애가: 어디에도 걸림이 없다. 화엄경을 쉽게 풀이한 것이다.
정토종: 아미타불이 사는 내세의 존재를 믿고 죽은 후 내세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불교의 한 종파이다.
원측(613~696)
- 문무왕 때 당의 현장에게 유식 불교를 배웠다.
- 현장의 사상을 계승한 당의 승려 규기와 논쟁을 하며 당 수도의 서명사에서 서명학파를 형성하였다.
- 효소왕 때 원측의 제자 도증이 신라에 원측의 유식학을 전파하였다.
- <해심밀경소>, <성유식론소>, <주별장> 등을 저술하였다.
김교각(696~794)
- 성덕왕의 아들로 당에 건너가 안휘성 구화산에서 포교활동을 하며 화엄경을 설파하였다.
- 입적 후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평가되었다.
진표(법상종)
- 경덕왕 때의 승려로 불교 대중화를 위해 점찰 법회를 열며, 내세와 현세를 모두 구제해준다는 미륵신앙을 주장하였다.
혜초(704~787)
- 중국에서 인도 승려에게 밀교를 배웠고 인도의 불교유적을 답사한 후 인도와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의 풍물을 기록한 <왕오천축국전>을 저술하였다.
- 1908년 프랑스 학자 펠리오가 중국 둔황 천불동에서 발견하였다.
- 현재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소장되어있다.
4. 발해의 불교
- 왕실 귀족 중심의 불교였으며, 고구려 불교를 계승하였다.
- 수도 상경에서 10여 개의 웅장한 절터와 불상이 발견되었는데 불교가 융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.
- 문왕이 전륜성왕(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, 불교적 이상 군주)이라 자처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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